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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어디 뒀는지 자꾸 잊어버릴 때마다 저는 그냥 나이 탓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 나이 문제가 아니라 해마를 얼마나 쓰느냐의 문제라는 걸 알고 나서, 솔직히 좀 찔렸습니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기 위한 게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 정말 나이 때문일까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기억력이 흐릿해지는 게 당연한 노화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나눈 대화가 가물가물하거나, 분명히 챙겨뒀던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을 때 그냥 "나이 드니까 그렇지"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뇌인지과학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핵심은 해마(Hippocampus)였습니다. 여기서 해마란 뇌 양쪽 측두엽 안쪽에 각각 약 5cm 크기로 자리 잡은 구조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상적 사건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MRI를 찍으면 귀 위쪽 깊은 곳에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뇌 안에 깊이 위치해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해마는 쓸수록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근육처럼 자극을 주면 그에 반응해 물리적으로 성장하는 영역이라는 겁니다. 이 말은 곧, 기억력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습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나이 탓을 하는 동안, 사실 해마를 그냥 놀리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시애틀 종단 연구(Seattle Longitudinal Study)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연령대마다 서로 다른 인지 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20대는 반응 속도와 집중력이 뛰어나지만, 오히려 판단력이나 핵심 파악 능력은 50대에 가장 발달한다는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출처: Seattle Longitudinal Study). 나이가 든다고 뇌가 무조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뇌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겁니다.

요약: 기억력 저하는 나이가 아니라 해마 사용 빈도의 문제이며, 해마는 자극할수록 커지는 가소성을 가진 뇌 구조입니다.

 

일화기억이 손상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해마가 담당하는 기억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일화기억(Episodic Memory)입니다. 일화기억이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순서대로 기록하는 기억의 형태입니다. 단순히 사실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제 저녁에 뭘 먹었는지, 지난 주말에 누구와 어디를 갔는지 같은 경험 기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새로운 사건이 벌어져도 기록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매 순간이 연결 없이 뚝뚝 끊기는 것처럼, 그냥 찰나에만 사는 상태가 됩니다. 일상적인 외출조차 어려워지고, 주변 상황에 적응할 수 없게 됩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경우 해마가 가장 먼저 손상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초기 증상이 바로 가까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던 기억들이 사라지고, 가장 가까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이어지는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협회(Alzheimer's Association)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5,500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그 중 60~70%가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해당합니다(출처: Alzheimer's Association).

또 하나 제가 직접 생각해 보니 찔렸던 부분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경험, 이른바 블랙아웃(Blackout) 현상입니다. 여기서 블랙아웃이란 알코올이 해마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그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 애초에 기록조차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기억이 지워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저장이 안 된 겁니다. 이를 무용담처럼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게 반복되면 해마에 누적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술자리에서 확실히 한 잔을 줄이게 됐습니다.

요약: 일화기억은 해마가 담당하는 핵심 기능으로, 손상 시 치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알코올 과다 섭취는 이 기능을 일시적으로 차단합니다.

 

해마 트레이닝,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해마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면 트레이닝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해마는 맥락, 즉 어떤 장소에서, 어느 시간대에, 어떤 순서로 사건이 펼쳐졌는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치 머릿속에서 짧은 영화 한 편을 찍듯이 경험을 저장하는 거죠.

핵심은 집어넣는 것보다 꺼내는 것입니다. 정보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는 해마가 강화되지 않습니다. 저장된 기억을 꺼내어 다시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거나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해마가 실질적으로 자극됩니다. 제가 영상을 본 뒤 바로 시작한 것도 이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에는 하루 일기를 세 줄 쓰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오늘 있었던 일이 더 또렷하게 정리되고,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실제로 단기 경험을 한 번에 기억하는 원샷 러닝(One-shot Learning) 능력이 해마의 핵심이고, 이 능력은 기억을 자주 꺼내 볼수록 강화됩니다.

해마 트레이닝에 효과적인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나 메모로 적기
  • 가족이나 친구와 하루 경험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누기
  • 사진을 찍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며 언제·어디서·누구와 있었는지 떠올려 보기
  •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해마에 새 맥락 제공하기
  • 디테일을 기억하려고 애쓰며 해마를 살짝 괴롭혀 주기

특히 세 번째 방법은 제 경험상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만 찍고 지나쳤는데, 며칠 후 사진첩을 다시 열어 그 장면을 떠올리는 습관을 들이니 기억이 훨씬 선명하게 남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요약: 해마 트레이닝의 핵심은 기억을 입력하는 것보다 꺼내고 이야기하는 반복 과정이며, 일기 쓰기와 대화가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뇌에 대한 흔한 오해들, 진짜인지 따져봤습니다

뇌와 관련된 속설 중에 실제로 오해로 굳어진 것들이 꽤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은 것들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사람은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나머지 90%를 활성화하면 초인적인 능력이 생겨야 한다는 논리인데, 실제로는 100%가 어떤 상태인지 정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뇌의 각 영역은 상황에 따라 돌아가며 활성화될 뿐, 특정 퍼센트로 규정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어떤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죠. 재밌는 설정이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머리가 크면 뇌도 커서 더 똑똑하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뇌 크기나 무게, 볼륨은 지능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뇌세포의 수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신경망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뇌가 이만하게 그려진 애니메이션 속 박사님 캐릭터들이 떠오르는데, 그건 그냥 시각적 과장 표현이었던 셈입니다.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두 모양이 뇌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생겨난 이야기일 뿐, 특정 식품이 뇌 기능을 직접 향상시킨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견과류를 포함한 균형 잡힌 식사는 전반적인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호두만 집중적으로 먹는다고 기억력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뇌는 상상과 현실을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편도체(Amygdala)가 등장하는데, 편도체란 해마 끝에 붙어 있는 구조물로 공포·불안·정서적 반응을 담당하는 영역입니다. 극심한 공포 경험이 편도체를 과도하게 자극하면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과학습된 상태로 남게 됩니다.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신경과학적 기전입니다. 뇌가 리얼하게 받아들이는 자극이라면 실제든 상상이든 신체 반응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생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요약: 뇌 10% 사용설, 머리 크기와 지능의 관계, 호두의 뇌 강화 효과는 모두 과학적 근거 없는 오해이며, 뇌는 상상과 현실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해마 트레이닝을 하면 실제로 기억력이 좋아지나요?

A. 해마는 자주 사용할수록 물리적으로 커지는 가소성을 가진 영역입니다. 일기 쓰기나 경험을 이야기하는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면 일화기억 능력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차가 있고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꾸준한 습관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필름이 끊기는 게 해마에 정말 나쁜가요?

A. 네, 알코올이 해마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면 그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 애초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기억이 지워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저장 자체가 안 된 상태입니다. 이런 블랙아웃 현상이 반복되면 해마에 누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Q. 화투나 게임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게 사실인가요?

A. 화투 자체의 규칙을 익히는 것은 해마보다는 다른 학습 영역과 관련이 깊습니다. 단, 화투를 치면서 나누는 대화나 상대방의 패턴을 기억하는 행위는 해마 자극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게임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경험을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이야기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Q. 50대에 뇌 성능이 가장 좋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시애틀 종단 연구에 따르면 반응 속도나 집중력은 20대가 높지만, 판단력과 핵심 파악 능력, 추론 능력은 50대에 가장 발달한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뇌가 전반적으로 퇴화하는 게 아니라, 연령에 따라 각기 다른 인지 능력이 꽃을 피우는 구조입니다.

 

Q. PTSD와 해마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A. 극심한 공포 경험은 해마 끝에 붙은 편도체를 과도하게 자극해 그 기억을 과학습 상태로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해당 기억이 잘 잊히지 않고, 비슷한 맥락만 감지돼도 강한 반응이 촉발됩니다. 현재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해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어쓰는 치료적 접근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결론

이 내용을 접하기 전까지 저는 뇌 건강이란 전문적인 의료 영역의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를 자극하는 방법이 일기 쓰기, 하루 경험을 이야기하기, 사진 보며 기억 떠올리기처럼 돈 한 푼 들지 않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와 닿았습니다.

특별한 영양제나 비싼 훈련 프로그램을 찾기 전에,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가족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해마는 그 대화 한 번에도 분명히 반응합니다. 저는 그 작은 습관이 생각보다 오래 가는 변화를 만들어 준다는 걸 제 경험으로 확인하는 중입니다.

참고: https://youtu.be/rIH_FPILkUY?si=3pMC5TkZxu9TbvrV